작게 피어나 먼 곳으로 향기를 드리우는 난초. 그 아름다움에 매료된 이들은 난잎의 고운 선을 반복해 그리며 자신의 이상에 가까워지려 했습니다. 전장연 작가는 이 난초화를 중력 세계로 끌어옵니다. 뜨거운 열과 무자비한 두들김에 휘어진 검은 철판들이 공간을 지르며 ‹어제와 오늘›(2024)을 완성합니다. 이처럼 단단하고 '무거운 난'을 치는 것은 한 인간의 삶에 주어진 수많은 이름의 무게를 견디기 위한 작가의 수행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선우 작가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물을 무대 위로 올려 초현실적인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대화 펼치기›(2024)에서 본래의 성질과 온도, 시간을 잊은 사물들은 각자의 소신대로 자유로운 연기를 펼쳐 보입니다. 유리컵에 담겨 있던 물은 어느새 사라져버린 컵 없이도 기둥으로 서 있고, 장막 뒤로 놓인 성냥불은 아무것도 태우지 못했지만 붉은 빛으로 번져 나갑니다. 생경한 작용들로 가득한 장면은 ‘정적인 언어’로 정리된 물리 세계를 ‘동적’으로 풀어헤치며, 우리가 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