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호 작가는 개인전 «Three Shades»(2020, 스페이스 소)에서 선보인 작품들을 3D 스캐닝을 통해 데이터화하고, 그 다음 해부터 이를 기반으로 디지털 공간에서 조각을 생성해내는 ‹Eccentric Abattis› 작업을 전개합니다. 작가는 '실제 조각' 그리고 '디지털 오브젝트'라는 두 가지 개념을 언급하며 물질적인 조각과, 실체 없이 정보로 존재하는 조각에 대해 설명합니다. 작가는 조각을 정보화함으로써 더욱 다양하고 과감한 조각의 변이를 꾀합니다. 현실의 물리법칙으로부터 자유를 얻은 ‹Eccentric Abattis›는 하나의 모본에서 출발하지만, 무한히 분절되고 재조합될 수 있습니다. 이병호 작가가 이러한 경로를 설계하게 된 것은 마치 생명체가 긴 시간에 걸쳐 그 모습을 조금씩 바꾸어 가는 것과 같이, 조각의 변용을 유도하며 이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으려 한 것입니다.

이번 전시 «환상의 빛»의 말미에서 만날 수 있는 대형 부조 작품인 ‹Image Thing›(2025)은 앞서 설명한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조각‘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작품은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 이전 ‹Eccentric Abattis›(2024)로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약 1년의 시간을 거치며 작품은 동일한 형태만을 흔적으로 남겨두고, 새로운 색과 표현을 동반하는 회화적 실험에 의해 ‹Image Thing›으로 재탄생합니다.